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침공 (문단 편집) === 독일 국방군 === (편제는 [[폴란드 침공/독일군 편제]] 문서 참조) 독일군은 전통적인 포위섬멸전 교리에 따라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가해 폴란드군의 퇴로를 끊은 다음 포위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중부전선에서의 공세는 자제하고, 대신 북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 여기에 당시 독일의 괴뢰국이던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의 베르놀락 야전군(Poľná armáda „Bernolák)이 남부집단군과 함께 공격에 가담하여 대규모 공세를 실시해 양군이 비스와강 유역에서 합류하여 국경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폴란드군이 미처 퇴각하기 전에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기로 하였다. 총 150만의 병력이 동원되었으며 이외에도 베르놀락 야전군 소속 5만여 명이 함께 동원되었다(훗날 베르놀락 야전군의 일부인 고속 기동 부대 칼린치악(Kalinčiak)은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주공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의 남부집단군으로, 총 병력은 88만 6천여 명(8군, 10군, 14군)에 이르렀다. 8군과 10군이 폴란드 영토 중앙을 가로질러 진격하는 결정적인 공세를 가하고 14군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왕국|헝가리]] 국경을 따라 폴란드 영토 남쪽으로 진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특히 10군에는 독일군 기갑 세력이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폴란드 중앙부의 북동부 지역까지 진격하여 결정적 공세를 가하는, 독일군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주공인 남부집단군 중에서도 주공이었으니 이 평가는 전혀 아깝지 않다. 특히 10군의 진격로 상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부유한 중공업지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페르디난트 차틀로시(Ferdinand Čatloš) 지휘 하에 3개 사단으로[* 3개 보병사단. 슬로바키아군은 폴란드 침공 이후 차량화 사단 하나를 더 갖추어 독소전쟁에도 참가한다. 다만, 군 재편성을 거쳐서 오히려 규모는 줄어든다.] 편성된 5만 1,306명의 병력을 보유한 친독 슬로바키아군 또한 폴란드 남부 국경으로 진군하여 독일군을 돕게 했다. 한편 [[페도어 폰 보크]]의 북부집단군(3군, 4군, 예비 사단 4개로 구성, 총 병력 63만 명) 중 4군은 단치히 회랑을 관통, 동프로이센과의 육상 교통로를 형성하며, 동프로이센에 있던 3군은 그대로 남하하여 포위망의 북쪽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들은 비스와강에서 합류, 바르샤바 서부에서 폴란드군 주력을 포위 섬멸하고 이후 주력이 사라지고 예비군 동원이 채 끝나지 않은 폴란드를 짓밟으며 수도 바르샤바로 곧장 진격할 계획이었다. 여기에 폴란드 내부의 독일인들이 제 5열을 형성하여 호응하기로 되어 있었다. 합계 150만의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에 동원되었다. 히틀러는 8월 31일 침공을 9월 1일 오전 4시 45분부터 시작할 것을 명령했다. 독일이 남부 전선을 주공으로 삼은 이유는 전쟁에 필요한 폴란드 중화학 공업 지대와 탄전이 폴란드 남부 지역에 밀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남부 폴란드-독일 국경 지대 중 상(上) 실롱스크(Górny Śląsk)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폴란드와 독일의 주요 분쟁지역으로, 해당 지역은 탄전과 광산이 밀집,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와 독일 간의 국경분쟁을 거쳐 상부 실롱스크는 분할되어 32%는 폴란드에, 68%는 독일에 귀속되었는데 폴란드에 넘어간 지역이 경제적으로 더 가치있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군사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인해 독일 사령부는 폴란드의 남부 국경을 주공 방향으로 잡았다. 당시 4천여 기에 이르렀던 공군기 중 60%인 2,315기와 전체 기갑 전력의 85%인 전차 2,750대 및 장갑차 1,094대, 야포 9,000문을 폴란드 방면으로 배치했으며, 총 6개 기갑사단이 폴란드 전선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들 전차 중 [[3호 전차]]와 [[4호 전차]]는 모두 합쳐 310대뿐이었고 체코슬로바키아제 [[LT vz. 35]]와 [[LT vz. 38]] 역시 각각 120대, 57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1호 전차]]와 [[2호 전차]](1,127대)였다. 특히 1호 전차의 경우는 그냥 철판 위에 [[기관총]]만 달아 놓은 격이었던 [[TKS]]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았지만 [[7TP]]와 마주치면 그야말로 [[학살]] 수준으로 터져나가 독일군 사령부로 하여금 속 터지게 만들었다. 대전 초기 서방 연합국에 비해 빈약했던 독일의 기갑 전력을 보여 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1939년 당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공군 중 하나로 조종사들의 기량과 항공기의 성능도 수준급이었다. 이들은 폴란드 영토 전역에 폭격을 퍼부어 폴란드군의 진격을 방해하고 군수 물자 생산 지역을 파괴할 것이었다. 특히 [[Ju87]] [[급강하폭격기]]가 이에 큰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군사 작전 이외에 독일군은 폴란드계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계획도 짰다. 타넨베르크 작전(Unternehmen Tannenberg)에 의하면 독일군은 폴란드 침공 이후 6만 1천여 명의 폴란드 엘리트들을 처형하기로 되어 있었다. 침공이 시작된 후 독일군은 폴란드 민간인 2만여 명을 처형했으며,[* 이는 직접적으로 독일군 당국에 처형된 수치만을 합산한 것으로, 실제 폴란드 침공 당시 20만에 이르는 폴란드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 중 2천여 명은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독일 내에서 학살된 폴란드계 독일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